두렁ㅇ두렁
Dooreong for wetland

공모전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이트를 만나게 됩니다.
특히 요즘은 지방에서 발주하는 공모전이 많다 보니, 주변이 자연환경으로 둘러싸인 곳들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요.
물론 오늘날 대한민국에 사람이 손길이 완전히 닿지 않은 온전한 자연이 어디있겠냐마는,
이번 사이트는 다른 곳들과 비교해도 사람들의 자취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곳이였습니다.

이런 곳에 건축을 하게 되면 으레 자연을 보호하고.. 배려하고.. 순응하는.. 그런 맥락 지향적인 작업들을 결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것이 건축가로서의 본능인지, 막연한 죄의식인지. 아니면 어디선가로부터 학습된 그런 일종의 설계 루틴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런 결심을 떠올린지 3초도 지나지 않아,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훌륭했던 여러 선배 건축가들의 레퍼런스들이 자연스레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그들이 만들어낸 유려한 건축 어휘들을 따라 사용해보고 싶은 욕망도 스멀스멀 생기고요.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미 학습된 어떤 관성을, 윤리라고 오해한 채로 따라가고 있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그런 상투적이고 손쉬운 생각들로부터 조금은 멀어져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감상적으로 혹은 윤리적으로 자연과 건축을 바라보기보단,
조금은 건조한 방법일지라도 나름의 명확한 기준이나 체계를 가지고 설계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이것저것 공부를 하다보니 유네스코의 ‘인간과 생물권 계획(Man and the Biosphere Programme, MAB)’이라는 프로그램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MAB는 단순히 자연을 신성하게, 혹은 윤리적으로만 판단하는 이분법적인 개념이 아니더라구요.
공부할거리가 상당히 많긴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던지는 질문은 어쩌면 간단합니다.
“오늘날 인간과 자연은 이미 서로 얽혀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얽혀 있게 할 것인가?“
MAB는 인간 중심주의와 자연 중심주의 어느 한쪽에 서기보다는, 둘의 공존 관계를 재구성하는 방식에 대한 내용이였습니다.
단순히 언어로만 이루어진 이론이 아니라 꽤나 실천적인 프레임워크이기도 했구요.

MAB에서는 일반적으로 공간을 3개의 구역으로 나눕니다.
– 핵심구역(Core Area) : 생물다영성 보전을 위한 구역으로, 인간 활동은 금지되거나 최소한으로 제한
– 완충구역(Buffer zone) : 핵심구역을 둘러싸며 제한적인 인간 활동이 허용. 생태계를 보호하는 방어막 역할을 함.
– 전이구역(Transition Area) : 생물권보전지역의 외곽, 농업, 주거, 관광 등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 이루어지는 영역.

이 세 구역은 단순히 ‘보호 강도’에 따라 나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과 자연이 실제로 공존하는 방식을 실험하는 정도의 차이라고 보는 것이 좀 더 정확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 구역들은 분류를 위한 용어일 뿐, 결국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연속된 시스템으로 작동합니다.

그러니 이를 건축적으로 해석해보면,
중요한 것은 경계(boundary)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영역 사이에 전이(transition)를 만들어내는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건축은 경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보다, 서로 다른 영역이 어떤 방식으로 이어지고 전환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이를 만드는 몇 가지 개념을 고민했고, 그 중 하나가 ‘두렁’이였습니다.
두렁은 사이트 주변의 논두렁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인데요.
우선 건축이라는 행위는 결국 태생적으로 자연과 인공 사이에 뚜렷한 경계를 만들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건물로 경계를 만드는 대신, 땅 자체를 조정하는 방법을 통해 좀 더 부드럽고, 입체적이고, 동시에 다층적인 경계
즉, 전이를 만들어보자 라고 생각했습니다.

두렁은 지형의 완만한 높낮이를 통해 자연과 건축을 물리적으로 연동합니다.
나아가 개념적으로는, 인공적으로 조성되었으나 자연의 일부로 동화되는 ‘인공적 자연’이라는 중성적 상태로서 자연과 인공 둘 사이를 매개합니다.
두렁을 원형의 기하학적인 형태로 만든 것 역시 자연과 인공 두 속성 사이의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불규칙한 자연을 어설프게 흉내내는 곡선을 쓰고 싶지는 않았어요.

방문자센터는 앞서 설명드린 전환의 과정을 공간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계획했습니다.
시야와 조망 뿐만아니라, 빛과 레벨 등에 미묘한 변화를 줘서 방문객들이 이동하면서 자연을 접하게 되는 과정을 신경썼습니다.

땅에 건축을 얹고 남은 나머지 부분을 다루는 건 항상 어렵게 느껴집니다.
지루할 수도 있는 저희 생각의 궤적을 끝까지 따라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크롤 쭉쭉 내리신 분도 어찌되었든 감사합니다!)

Location 경상남도 함안군 Haman-gun, Gyeongsangnam-do, Korea
Year 2026.05.
Use 방문자센터 Visitor centre
Area 470m² (140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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